이른 새벽, 냉장고에서 차가운 두유를 하나 꺼내든다. 꿀떡꿀떡 넘어가는 느낌이 좋다. 오늘은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것 같다. 까슬한 보라색 바람막이를 걸치고 검정 꽃무늬 고무줄 바지를 입는다. 왠지 요즘 무릎이 자꾸만 쑤신다. 거슬리는 무릎을 뒤로 한 채 흰색이었던 신발끈을 동여 맨다. 문을 여니 기분 나쁜 쇳소리가 잠을 깨운다. 콧구멍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것이 기분 좋다. 눈앞에는 우거진 빌딩숲과 판자집들이 대조되어 보인다. 굽은 허리를 짊어 지고 한걸을 한걸음 들뜬 기대감으로 땅을 딛는다. 본인 몸 만한 리어카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제 비가와서 그런지 바닥이 질펀하다. 이젠 움직이는것 마저 일이 되어버린 몸뚱아리를 치켜세우며 한집 두집 리어카에 박스나 캔 따위 들을 채워 나간다. 어느덧 주변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빌딩들이 즐비한다. 어제 비가 온 탓인지 박스가 안보인다. 어느덧 해는 정수리를 비추고 있고, 근처 공원 의자를 찾아 서성인다. 땀에 절은 인중을 닦아 내며 참았던 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는다. 한 아이가 지나가며 말한다.
"으.. 냄새" 쓰레기냄새라도 맡은 냥 발걸음을 옮기는 꼬마가 밉다. 줄인 배를 움켜지고 다시 일어선다. 한 여름이라 그런지
콧등과 인중에는 땀이 계속해서 맽힌다. 찝찝함을 뒤로 한채 리어카를 채운다. 아침부터 아파왔던 무릎이 계속 말썽이다. 이만 돌아가야 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고물상에 들렀다. "할머니 3100원이에요.:"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세장과 언제 만들어 졌는지 까만 백원 짜리 동전 한개가 손에 잡힌다. 뿌듯하다. 어제 비가와서 오늘은 헛탕인줄 알았는데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던건 이 때문일까.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벼운채로 동네 수퍼를 향한다. 신라면 두개와 두부 한모를 두 손에 쥐고 계산대를 향한다. " 2900원이요" 무거웠던 손은 가벼워진채 집으로 향한다. 아직 오후이지만 집안은 한 밤중 처럼 캄캄하다. 낡은 가스레인지 위에 양은 냄비를 올리고 수돗물을 채워 넣는다. 라면 스프와 면, 숟가락으로 으깬 두부를 넣고 한참을 끓인다. 요즘 속이 안좋아 푹 끓이지 않으면 소화가 안되어 참 힘들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잡지를 밥상에 얹고, 그 위에 냄비를 올린다. 두꺼운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고 아무 채널이나 켜 놓는다. 다만 티비를 보지는 않는다. 그저 묵묵히 젓가락을 올릴뿐이다. 싱크대에 그릇을 담궈 두고 자리를 잡고 무거운 몸을 빗겨 누워본다. 무릎이 계속 말썽이다. 창 밖엔 물방울이 몽올몽올 맺혀있다. 어제 비가 온 탓이다. 식사를 하고 나면 습관처럼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눈꺼풀이 떨어진다. 여기는 구룡마을 판자촌이다.